비르투오소(virtuoso)는 놀라울 만큼 탁월한 기교로 청중을 매료시킨다. 19세기 파리에서 비르투오소는 음악 연주에서뿐만 아니라 체스 게임, 요리, 범죄 탐지 등 광범위한 활동영역에서 활약하였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는 19세기 비르투오소의 화신이었다. 그의 눈부신 테크닉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청중을 늘 의식하며 행동하는 ‘배우’였다. 그랜드 피아노와 분투하고, 그것을 길들이고 마침내 지배하는 그에게 청중은 열광했다. 툭하면 피아노의 현을 끊는 ‘공격,’ 건반을 수직으로 내려칠 때의 ‘폭력,’ 이에 건반조차도 피를 철철 흘리는 이미지, 대동하는 오케스트라에 군림하는 장군의 이미지 등은 당대 일화와 비평에서 센세이셔널한 광경들로 그려졌다.
한편, 비르투오소는 경계를 초월하는 그 본질 때문에 비난을 받기도 한다. 여기에 비르투오소의 역설이 있다. 당시 비평가들은 탁월한 ‘연주자’이지만 진정한 작곡가는 아닌 비르투오소, 감각을 자극하지만 사고는 결여된 비르투오소, 공허한 테크닉을 선보이는 기계적인 비르투오소, 즉 ‘영혼’이 없는 비르투오소를 우려하였다. 이러한 안티-비르투오소 담론 속에서 리스트의 비르투오시티(virtuosity)는 그 진가를 더하게 되는 역설을 낳는다. 그는 틀에 박힌 연주관행을 탈피하고, 장르의 통념을 넘어서고, 피아노 소리의 한계에 도전하며 자신의 비르투오시티를 지속적으로 차별화하였다.
이 책은 안티-비르투오소 담론에서 비르투오소에 대한 열광과 함께 또한 반감어린 비평이 뜨거웠던 역설적 현상에 집중한다. 또한 비르투오소의 시각화(visuality), 육체화(physicality), 안무(choreography)에 대한 당시의 담론을 분석하며 콘서트 홀에서 리스트와 청중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아울러 비르투오소의 전형적 장르, 레퍼토리, 관행의 구체적 사례를 다루고 각각에 대한 리스트의 대응에 집중한다. 비르투오소 즉흥연주를 조명하면서 서유럽 전통과 집시 즉흥연주자의 모방을 접목한 리스트의 문화횡단적 접근을 탐구한다.
< 차례 >
1장 19세기 비르투오시티와 안티-비르투오소(anti-virtuoso) 담론
1-1. 19세기 비르투오시티 개념 바로잡기
1-2. 기악 비르투오시티, 1815-1848년
1-3. 기악 비르투오소 개념의 미학적, 철학적 사유
1-4. 안티-비르투오소 담론
1-5. 리스트의 비르투오시티의 차별화
2장 비르투오소와 청중
2-1. 19세기 콘서트 문화와 비르투오소 콘서트
2-2. 리스트의 콘서트 문화의 차별화
2-3. 비르투오소의 시각화(visuality), 육체화(physicality), 안무(choreography)
2-4. 아연실색하는 청중
3장 비르투오소의 장르, 오페라 판타지에 대한 불안과 갈망
3-1. 오페라 판타지를 보는 시각
3-2. 오페라 판타지에 대한 청중의 열광
3-3. 판타지 장르에 내재된 불안, 갈망
3-4. 판타지의 새로운 스타일
3-5. 독창적 판타지를 작곡하는 리스트: 《노르마의 회상》
4장 비르투오소의 즉흥연주, 리스트의 문화 횡단적cross-cultural 사고
4-1. 서유럽 피아노 즉흥연주와 리스트의 초기 즉흥연주
4-2. 리스트의 초기 문화 횡단적 사고
4-3. 즉흥연주, 그 의심스러운 존재: 1830-1840년대, 즉흥연주에 대한 비평
4-4. 1830년대 리스트의 해결책, 프래그머티즘(pragmatism)과 아이디얼리즘(idealism) 모두 껴안기
4-5. 1840-1850년대, 즉흥연주의 쇠퇴
4-6. 1840-1850년대, 집시 즉흥연주의 발견: 그의 진지하고 면밀한 접근
4-7. 리스트에게 즉흥연주는 어떤 의미인가
5장 비르투오시티의 논의가 나아가야 할 방향 모색
5-1. 여성 비르투오소의 시각화와 성 정체성 담론
5-2. 리스트 비르투오시티의 범위, 그 확장의 필요성
5-3. 리스트의 1850년대 저서, 비르투오소에 대한 옹호
맺음말 『헝가리 집시 음악』과 <클라라 에세이>
< 지은이 > 김현주
이화여자대학교 피아노과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대학교(Indiana University Bloomington)에서 피터 버콜더(J. Peter Burkholder)의 지도로 음악학(Musicology)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 논문은 “Dynamics of Fidelity and Creativity: Liszt’s Reworkings of Orchestral and Gypsy-Band Music”이다. 저서로는 박사학위 논문을 발전시킨 Liszt’s Representation of Instrumental Sounds on the Piano: Colors in Black and White (University of Rochester Press, 2019)가 있고, 논문으로는 “Translating the Orchestra: Liszt’s Two-Piano Arrangements of His Symphonic Poems,” Journal of Musicological Research (2016), “Interpretive Fidelity to Gypsy Creativity: Liszt’s Representations of Hungarian-Gypsy Cimbalom Playing,” Journal of the American Liszt Society (2016) 등이 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출강 중이다. 리스트 연구를 거점으로 삼 아 서유럽 음악과 헝가리 집시음악 간의 상호교섭, 판화예술과 음악 편곡 간의 상호관계, 19세기 문화와 음악 등 학제적·국가 횡단적·문화횡단적 연구로 시야를 확장하고 있다.